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2. 11. 03:24

박근혜 대통령 “‘증세 없는 복지’ 말한 적 없다”…정말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연 새해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대선후보 토론회 등 각종 발언 보니…
홀로 “증세 아닌 ‘지하경제 활성화’ 재원 확보” 강조
재원조달방안 질의에 “복지정책 증세 없이 실현 가능하다”


“‘증세 없는 복지’ 말한 적 없다”는 발언과 상관 없이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선언은 사회적으로 이미 공식화
이제라도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의견 공표해야“

 

나는 한 번도 ‘증세없는 복지’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등을 불러 했다는 말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 ▶관련 기사 ) 그간 ‘증세’는 박근혜 정부의 ‘금기어’로 여겨져 왔는데요.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파동 등 사실상의 증세 조처들이 이어지면서 증세를 증세라 부르지 못하는 ‘증세 금기’를 언제 공식적으로 철회할 것인지 주목받았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는 의외의 대답이 나온 것입니다. 파문이 일자 원 정책위의장은 서둘러 “박 대통령의 발언을 잘못 전달한 것 같다”고 급히 진화에 나섰는데요. ( ▶관련 기사 ) 동석한 유승민 원내대표도 “제가 들은 바로는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 적은 없다. 그 부분을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다시 진실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한 적이 정말 없을까요? <한겨레>가 3차례에 걸친 대선후보 토론회와 인수위 이후 각종 대통령의 발언들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 ‘증세’ 대신 ‘신뢰’ 강조한 첫 토론회…“약속 지키는 정치 하겠다”

 

 

박근혜(왼쪽부터) 새누리당 대선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대선후보 3인(박근혜, 문재인, 이정희)이 모인 TV 토론회는 세 차례 열렸습니다.

첫 TV 토론회는 2012년 12월4일 열렸지만, 외교 및 국방, FTA문제가 주제여서 복지와 증세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복지와 증세를 한 차례 엮어 언급한 것은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였습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장점으로 소통과 정직의 리더십을 든 뒤 “생각을 숨기거나 당선을 위해 마음에 없는 정책을 말해선 안된다”며 “재벌개혁이든 검찰개혁이든 또 복지를 위한 증세든, 심지어 언론에 대한 비판까지도 솔직하게 제 생각을 밝혀 왔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첫 토론회에서 복지와 증세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신뢰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하겠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고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는 정치를 지금까지도 해왔지만 꾸준히 노력해가겠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 ‘복지’ 강조한 2차 토론회…“증세 아닌 ‘지하경제 양성화’로 재원 확보”

 

대선 토론회에서 복지와 증세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진 것은 12월10일 2차 TV 토론회 때였습니다. 당시 주제는 경기침체 대책과 일자리 창출, 복지 문제 등이었습니다. 세 후보 모두 ‘복지’를 강조했습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의료개혁 등을 통해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후보는 복지야말로 실질적인 중산층 서민들의 실질 생활비 부담을 낮추는 성장정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도 무상보육 등 ‘생애주기별 맞춤복지’를 주장했습니다.

 

복지재원 마련에 자연히 국민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날 사회자가 “재원 마련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질문하자, 박 후보는 “재정건전성을 뛰어넘는 복지 보퓰리즘은 두고두고 후세에 짐이 된다. 재원과 관련해 국민의 부담을 늘리기 전에 먼저 정부가 예산을 비효율적인 부분을 줄이고 나라살림을 투명하게 꾸려나가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복지재원의 60%는 이렇게 정부가 씀씀이를 줄여 마련하고, 나머지 40%는 세입확대를 통해 마련하지만 국민에게 직접적인 증세 부담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비과세 감면제도를 정비한다거나 지하경제를 활성화(양성화를 잘못 말함)해 매년 27조, 5년간 135조원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 재원조달방안 질의에 박근혜 후보 “복지정책 증세 없이 실현 가능하다”

 

자유토론 때도 증세 문제로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더러) 부자감세라며 ‘부자’를 붙이는데, 그 감세의 거의 반 이상은 중산층, 서민, 중소기업에 돌아갔다”며 ‘감세’ 기조를 확실히 했습니다. 문 후보가 “박 후보는 아직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주장하고 경제민주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는데, 줄푸세로는 경제민주화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을 정도였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복지 문제를 풀려면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국민들이 증세란 말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하지 않는다”, “세금을 거둬야 복지를 확실히 늘릴 수 있다. 세금을 말하지 않는 복지는 거짓이다”라며 박 후보를 날카롭게 겨냥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복지) 공약 발표할 때 재원조달방안을 검토해 실현불가능한 건 다 뺐다”고 자신의 복지정책이 증세 없이도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정희 후보에게 “어떻게 (복지공약의)재원을 마련할 거냐? 증세한다는 얘기냐?”고 공격했습니다.

 

 

■ 상대 후보를 ‘증세’로 몰아붙여 공격하기도

 

상대 후보를 ‘증세’로 몰아붙이는 논리는 박근혜 후보의 주된 토론 도구였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교육과 과학기술 등이 주제였던 3차 TV 토론회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증세할 것이냐’며 문재인 후보를 몰아붙였습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가 ‘1조5천억원으로 4대 중증질환을 모두 국가가 보장해 주겠다’고 공약한 데 대해 “암 환자만 1조5천억원이고 뇌혈관, 심혈관 환자까지 하면 3조6천억원이 드는데, (박 후보가 공약한 1조5천억원만으로) 충당이 가능한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박근혜 후보는 “네”하고 짧게 대답합니다. 그리고는 “문재인 후보의 복지재원 조달을 보면 증세를 통해 연간 19조원을 걷어 사용한다고 했다”고 공격의 칼날을 되돌렸습니다.

 

 

■ “증세 없는 복지 가능합니까?” 질의하자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겠다는 것”

 

 

 

 

문재인 후보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합니까?”

박근혜 후보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

 

대선토론 ‘짤방’(사진)으로 제작돼 유명해진 이 이미지는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간의 설전을 표현한 것입니다만, 실제로 이런 대화를 직접적으로 주고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이날 화제가 됐던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대통령이 됐으면 진작 했어요”와 같은 발언은 있었지만, 3차 토론회 말미에 반값등록금 및 사학법, 과학기술인재 양성 공약을 얘기하면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2차와 3차 토론회의 주제는 줄기차게 증세 없는 복지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복지를 위한 고소득자 증세를 대놓고 주장한 이정희 후보, ‘복지를 위한 증세도 솔직하게 밝히겠다’던 문재인 후보와 달리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확립하겠다던 박근혜 후보는 본인의 복지 재원조달 방안은 “국민 부담을 늘리지 않”겠으며 “재원조달방안을 다 계산”했다고 확언했고, 상대 후보가 증세하려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 대통령 당선 뒤에도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재정 확보할 것”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13년 1월28일 인수위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거듭 “새로운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비과세 감면 조정이나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방법으로 재정을 확보할 것”이라며 ’증세없는 복지’의 정책 기조를 확인했습니다. 2013년 8월 열린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에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정부가 국민에 대해서 가져야 할 기본 자세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적게 해드리면서도 국민 행복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 ▶관련 기사 : 조선일보 ) 언론은 이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 '증세 없는 복지' 기조 재확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제히 보도를 했습니다. 청와대는 이런 보도들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 정도면 “나는 한 번도 ‘증세없는 복지’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는 발언과 상관없이,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선언은 사회적으로 공식화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지요.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복지 재정 문제와 관련해 세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제라도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의견을 공표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