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2. 5. 03:18

박근혜 7시간 행적 재판에서 드러난 정윤회의 가증스러운 거짓말 셋

 

■ 박대통령 당선후 조용히 살아왔다? → 대기업 실세들에게 의전 받으며 호위호식
■ 90년대 중반 대통령 처음 알았다? → 80년대 육영재단 문제로 朴 남매와 갈등
■ 사라진 7시간대에 한학자 만났다? → 집에 있었다면서 왜 청와대서 5분 거리에

 

면죄부 받은 정윤회,
‘그 뻔뻔함이 끝이 없다’


재판 증인 출석 ‘비선 실세’ 의혹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일축
세월호 당일 행적 추궁에 진술 번복, 처음부터 변명으로만 일관
한화그룹 등 재판에 계류 중인 대기업 총수 사면에 영향력 행사
‘장인 최태민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장모가 천거’ 황당한 주장도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꼽혔던 정윤회 씨가 과거 언론의 취재에도 몸을 사렸던 것과 달리 이제는 언론사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정 씨는 지난 19일 열린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비선 실세’ 의혹과 관련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정 씨는 그동안 이 재판과 관련해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자마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특히 그는 세월호 당일 행적 등에 대해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채, 변명으로만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은 누군가의 불장난이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지난 몇 년 간 비선실세라는 세간의 시선을 받으며 갖은 호가호위를 누려왔음은 불변의 사실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 하더라도, 본인 이름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터인데 오히려 당당하게 대중 앞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선데이저널은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한 정 씨의 주장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이 조목조목 되짚어 봤다. 이러한 의혹들을 꼼꼼하게 따져보면 정 씨 주장의 허위가 그대로 드러난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정윤회 씨는 지난 8월 13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콘서트에 참석했다. 이날 본명이 아닌 ‘정윤기’란 이름으로 참석한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인 ‘호박가족’ 멤버들과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과 동행했다. ‘호박가족’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행사의 후원사는 모 재벌그룹. 이 그룹은 이 행사에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행사에 그룹의 부사장급 핵심 임원이 참석했다는 점(사건이 표면화되자 타부서로 좌천).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가 참가하지 않았다면 그룹의 고위 임원이 참가할 이유도 없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정씨가 참석하는 것을 알고 세간에서는 그룹 총수의 재판이라는 현안이 걸려 있는 그룹이 정씨에게 접근했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물론 그룹 측은 고위 임원이 참가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부사장의 의전을 받을 정도로 호가호위했다. 만약 그의 주장처럼 자신이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는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는 자리에 나와서는 안 됐다. 특히 문제의 그룹의 경우 총수 재판으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기업이었다.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정윤회씨와 얽힌 소문으로 난처해 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 법적 이혼한 상태인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가 한화그룹의 한 임원과 오랜 동향 친구이며, 한화그룹이 이를 통해 정씨에게 접근을 한다는 식의 말이 나돌았다. 특히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동선씨가 정윤회씨의 딸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승마선수라는 점이 소문을 증폭시켰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승연 회장의 아들과 정윤회씨의 딸이 모두 승마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이 때문에 지난 국정감사 기간 동안 정씨를 둘러싼 비선 실세 논란, 또는 정씨 딸이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발탁된 것을 둘러싼 특혜설 등이 불거져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대한항공도 정씨와 관련해 최근 내부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이번 문건파동 와중에서 정씨가 한때 대항항공 보안요원으로 근무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룹 인사라인이 최고위층으로부터 질책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중요한 사안을 왜 진작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느냐’는 식의 질책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권력의 풍향에 민감한 대기업들이 정윤회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씨 본인은 최근 불거진 문건파동 와중에서 자신이 비선 실세라는 논란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세간에서는 그를 권력을 등에 업은 그림자 실세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꾸준히 자신은 박근혜 정부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세상은 그를 ‘실세’ 혹은 ‘잠재적 실세’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날 정 씨는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1990년 대 말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시절 비서실장 제안을 한 것이 최태민의 처, 즉 정씨의 장모(최태민의 처)가 맞느냐’는 안 변호사의 신문에 “그렇다”고 시인했다. 정씨는 “장모가 일하는 데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해서 도와준 것”이라며 “당시엔 이유도 몰랐고,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장모와 박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정씨는 “그냥 알고 지내는 관계”라며 “장인어른(최태민)과 알고 지낸 사이여서 장모도 알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전처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을 처음 얘기한 시기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언론에 한 번 얘기가 나왔을 때 얘기를 들었다”며 “90년대 중반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러한 정 씨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본지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보는 지난 12월 14일 <정윤회 국정농단 ‘정권 후반 최순실이 반드시 정국의 핵 될 것’> 기사를 통해 최순실 부부가 육영재단 문제로 1980년 대 후반 박 대통령 남매와 갈등을 빚었다고 전했다. 부인이 육영재단 문제로 고통이 심했는데, 그가 육영재단 이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이었음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순실씨의 존재가 일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계기는 1987년 터진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측근으로 재단 업무에 관여하며 전횡하고 있다는 의혹이 직원들 사이에서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이 최순실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직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정윤회와 최순실 부부가 박지만 회장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최태민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여군 출신의 최 모 소령이 예편을 하자마자 유아교실 과장으로 취임하면서 많은 물의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지만씨·근령씨 쪽과 알력 다툼이 시작되었던 것. 박근혜 이사장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윗사람이 바뀌는데 공통적으로 최씨가 많았다고 한다. “박 이사장을 방패삼아 최씨 일가가 육영재단 재산을 가로채고 있다”는 지만씨·근령씨 쪽과 박근혜 이사장 사이에 다툼이 태동하던 시기다.
최순실씨는 이후 강남 압구정동에 초이유치원을 개설한다. 인상적인 것은 유치원 부설로 ‘민’ 국제영재교육연구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육영재단 유치원장을 맡으면서 최씨의 관심은 유아교육, 특히 영재교육 쪽으로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아교육과 관련한 단행본과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특이한 것은 논문의 발행처.  그가 다른 저자와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요인에 따른 아동의 격차연구 : 인지발달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한국문화재단연구소에서 1989년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오랫동안 이사직을 유지해온 재단으로 논란이 되었던 곳이다.

 

 

이 날 재판에서 정 씨의 발언은 지난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한 의혹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날 정 씨는 지난해 4월 16일 본인의 행적에 대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20분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학자 이상목씨 자택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귀가한 뒤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신사동 술집 연타발에 있었다고 정씨는 밝혔다.
그러나 정씨의 이 같은 증언은 지난해 8월 15일 검찰 소환 조사 당시 ‘낮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 집에만 있었다’(검찰 조서, 검찰 제출 진술서),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집에 있으니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이 가능하다’(검찰 조서) 등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 씨는 그로부터 나흘 뒤 검찰의 발신지 추적결과 지난해 4월 16일 오후 2시20분 서울 평창동으로 잡힌 사실이 확인되자 말을 바꿨다. 평창동의 한학자 이상목씨의 자택에서 점심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법정에서 “당시엔 집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며 “그래서 휴대폰을 추적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고 검찰에 통화내역을 제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씨가 검찰에 제출한 통화내역에는 발신지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고 변호인단은 지적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인데 이 날 ‘한학자’와 만났다면 과연 이러한 얘기를 주고 받지 않았는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한 하필 한학자와 만났다는 곳이 청와대 인근 평창동이었다는 사실도 석연치 않다.
실제로 안중민 변호사는 정씨의 행적에 대해 당일 오후 2시20분 평창동을 나와 전화를 건 이후 연타발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오후 6시까지 3시간 30분이 의문이며, 오전 10시부터 10시반까지에 대한 증빙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평창동 역술가의 집과 청와대 정문 사이 거리는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씨는 검찰 조사 당시 세월호 참사 당일 저녁 6시 신사동 연타발에서 친구들과 저녁약속은 정확하게 기억했다.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인 안중민 변호사는 “평창동에 간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연타발에서의 저녁 약속은 기억하면서 이상목씨와는 작년, 재작년 만나 왔으면서도 세월호 당일 약속은 기억하지 못하다가 모종의 필요에 의해 당일 방문했다는 진술로 번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리차드 윤 기자 입력 : 2015-01-25 10:01:28 / 수정 : 2015-01-22 11:30:11

<출처 : 선데이저널 USA>

 

본 기사는 펌 기사이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함!

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1. 12. 23:35

주진우 기자 "해외에서 비자금 저수지 찾았다"

 

"비자금 주인 꼭 찾아주고 싶어"…두바이 취재 "말 하면 취재원 위험"

 

오는 16일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보도관련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2012년 대선 직후 수년 간 취재를 통해 한국 권력자의 비자금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주진우 기자는 "군사정부 시설 비자금 저수지와 이명박 정부 시절 비자금 저수지를 찾았다"고 밝혔다. 2013년 3월 주진우 기자는 "해외 취재에서 스위스 은행 계좌를 조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주진우 기자는 지난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대선 직후 해외 취재에서 비자금의 저수지까지 가까이 갔다. 저수지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국의 권력자는 맞다"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는 "작년에는 미국에서 탐정을 사서 계좌를 까보기도 했다. 2~3년째 틈만 나면 취재하고 있다. 수사권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자금의 주인을 금방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는 "비자금 저수지는 1970~1980년대부터 있었던 저수지가 하나 있고, 이명박정부에서 만들어진 저수지가 하나 있다.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주인을 꼭 찾아주고 싶다"며 "이게(비자금이) 국민들의 돈이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는 시사인 290호에 쓴 '귀국보고서'에서 해외 취재과정을 언급하며 "스위스에서 큰 계좌 몇 개가 싱가포르로 옮겨졌다"고 밝힌 바 있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

 

 

주진우 기자는 지난해 김어준·김용민 변호사 등과 함께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관련 두바이 취재를 다녀왔다. 김용민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절대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사건의 근본을 흔드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진우 기자는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닌데, 그 당사자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박근혜·박지만 5촌 살인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지목된 박용철씨와 박용수씨는 사망했다. 두 사람과 함께 살해사건 당일 1차 술집에서 2차 술집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진 박용철씨의 측근 황아무개씨도 2012년 사망했다. 주진우 기자는 "주먹 좀 쓰던 황씨도 죽었다. 그래서 (제보자를 위해) 두바이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찰자료를 바탕으로 살인사건 수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주진우기자를 선거법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지난해 1심 선고에선 무죄를 받았다. 항소심(2심) 선고는 오는 16일로 예정됐다. 검찰은 재판부에 '주진우 징역 3년형'을 요청했다. 검찰은 2013년 5월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출처 : 미디어 오늘>

 

 

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1. 10. 04:49

'신년음악회' 공연 중 '박근혜 대통령' 비롯 일동 기립한 이유는…

 

지난 6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015 신년음악회'에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2000여명의 참석자가 공연 도중 애국가가 연주되자 일제히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참석자 등에 따르면 음악회의 마지막 순서는 KBS교향악단과 5개 합창단이 함께한 <한국 환상곡>이었다. 이 곡 후반부에서 합창단이 애국가를 합창하자 무대 뒤 스크린에서 태극기가 올라갔다.

 

그러자 한두명이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일어났고 주변에 몇명이 따라 일어나더니 결국 전원이 기립했으며 일부는 가슴에 손을 얹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음악회에 참석한 한 블로거는 "태극기가 올라가니 앞쪽 흰머리 어르신 두분께서 일어나셨다. 다들 우르르 일어나는 분위기가 됐다"면서 "음악의 피날레 성격의 태극기…예를 갖춰야하나 고민됐다. 모르겠다 싶었는데 외국 대사관 사람들, 대통령까지 다 일어서기에 나도 일어섰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5 신년음악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2000여명이 애국가가 흐르자 일제히 기립했다.

 

한국 환상곡 애국가 부분에서 태극기가 등장하는 연출은 종종 있는 일이다. 또 지휘자의 유도나 자발적으로 청중들이 일어나 예를 표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이념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과 오버랩이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케 하는 장면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회의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까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를 두고 '시대의 촌극으로 다뤄진 국기 하강식 장면을 '나라 사랑'으로 해석했다", "이건 나라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서워하라는 말이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부부가 언쟁을 벌이다 말고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다.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22. 12:27

최태민 사위 ‘정윤회’…또 하나의 그림자(2013.11.10 기사)

 

朴 인도네시아 순방중인 지난 10월 ‘鄭도 인도네시아에 있었다’


왜 하필 순방기간에 인도네시아에…회동 여부는 미확인
정윤회, 정호성-안봉근-이재만 등 靑 보좌진과 접촉설
감사원장 인사에도 개입 입김 불어넣었다는 ‘의혹’ 증폭
김기춘과 물밑 권력암투 청와대 핵심인사 鄭 측근 포진 

 

 

 

 

 

한 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다 2007년 대선을 전후해 종적을 감춘 정윤회 씨가 최근 활동을 재개한 사실이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 한국 유력 정치인은 <선데이저널>과의 통화에서 “정윤회 씨가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 중 인도네시아에 방문해 청와대 내 몇몇 인사들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가 인도네시아에서 청와대 인사들을 접촉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내에 있는 박 대통령의 측근은 대부분 정 씨가 추천한 인물들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 권력을 움켜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과 정윤회씨가 물밑에서 권력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정 씨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이런 일각의 의혹들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감사원장 인선을 두고 김희욱 동국대 총장과 성낙인 서울대 교수 등을 저울질했지만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갑작스럽게 황찬현 전 대법관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 에서는 여전히 황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는지 의아해하고 있으며 김 실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 씨가 감사원장 인선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다시 불거지는 정윤회의 막후 영향력 행사설에 대해서 <선데이저널>이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방문하기 몇 일 전에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순방 기간 내내 머물렀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그가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청와대 내 자신의 측근들을 만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보좌진은 대부분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당시부터 일했던 인물들이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기간에 주요 보좌진은 바뀐 바 없다. 대선 직전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전 보좌관을 제외하면,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고스란히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 국회의원 첫해 박 대통령의 의원실 보좌진이었던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고 이춘상 보좌관은 모두 정 씨 밑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는 정식 보좌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입법보조원’ 신분으로 출입증을 받아 다녔다고 한다. 2004년 박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된 뒤엔 “공조직이 대표를 모셔야 한다”며 자진사퇴했다.

 

 

 

종적 감췄던 정, 드러내놓고 활동재개

이후 박 대통령과 관련된 공개된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친박 핵심 인사들은 오히려 2007년 대선 경선 이후에는 박 대통령과 거의 접촉도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 수행을 담당했던 이대구 씨는 현재 서울 마포에서 경호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씨가 2000년대 초반에 그만두면서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수행을 맡아 왔다.
박 대통령은 1998년 국회 입성 이후 공부모임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동료 의원들을 비롯한 여러 통로로 전문가들을 추천받으면 이재만 보좌관(총무비서관)을 통해 조용히 불러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국회 활동 초기 정씨가 비서실장이었음을 감안하면, 정씨와 이들의 깊은 인연은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보좌진 4인방을 구성한 게 정씨라고도 한다. 이들은 ‘4대천왕’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 속에서 ‘문고리 권력’ ‘환관 권력’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정 씨가 이들로부터 별도의 보고를 받으며 계속 박 대통령의 행보에 개입한다는 의혹도 제기돼왔다.
하지만 대부분 의혹에 불과했을 뿐 정 씨가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에 정 씨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정 씨가 정호성 비서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는 전언은 그의 막후 영향력이 여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태민 사위 정윤회는 누구?

정윤회 씨는 고 최태민 목사를 연결고리로 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얽혀 있다. 최 목사는 1970년대 후반 박 대통령과 함께 한국구국봉사단을 운영했다. 당시 최 목사와 박 대통령과 관련한 갖가지 얘기들이 나돌자 1979년 중앙정보부가 최 목사를 조사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 중정보고서가 정치권에 떠돌았다. 최 목사는 박 대통령이 1982년부터 이사장을 맡았던 육영재단의 고문이기도 했다. 지난 경선 때부터 최 목사와 박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여러 얘기가 떠돌았다. <선데이저널> 역시 지난 2007년 최태민 X파일의 전문을 보도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최 목사와 관련한 의혹들은 대부분 부인했지만 다만 목사와 가까웠다는 점은 스스로도 인정한다.

 

 

최 목사와 관련한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최 목사가 사망한 1994년 이후에는 최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국회 보좌관을 지냈다. 박 대통령이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는 박근혜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 대통령은 정 씨에 대해 “최 목사의 사위란 것을 알았다”며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정 씨가 돕겠다고 해서 순수한 인연이 됐고 이후 입법보조원으로서 도와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 대통령과 정 씨의 공식적인 관계는 박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끊긴 것으로 돼 있으나 이후에도 ‘박근혜 최측근 인사’ ‘정윤회 보고라인’ 등의 말이 끊이질 않았다. 2007년 경선 때는 박 대통령의 외곽 조직인 ‘강남팀’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고 심지어 지난 4·11 총선 공천 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설, 현재의 보좌진 역시 정씨가 구성했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은 “정 씨는 2004년 이후 박 대통령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일축했다.

 

 

 베일 속 인물,  朴과 오랜 친구(?)

정 씨의 부인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씨다. 박 대통령보다 4살 아래인 최 씨는 20대 때 박 대통령의 말동무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그가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얼굴을 드러냈던 적이 단 한 번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바로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신촌로터리에서 괴한에 피습당했던 때다. 당시 한나라당 한 당직자의 전언에 따르면 최씨는 박 대통령이 입원했던 병실로 찾아와 지근거리에서 그를 간호했었다고 한다.

 

 

 

 


정윤회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가 유일하다. 그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그와 관련된 모든 의혹들을 부인한 바 있다. 다음은 당시 한겨레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나 지난해 대선 때도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와 기자들이 찾아다녔다.
“내가 완전히 그만둔 지 7~8년 됐다. 나를 만나고 싶다는 기자들은 주변에서 하는 얘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겠다는 건데, 지난해나 2007년 같은 경우엔 전국적으로 그랬다고 하더라. 그러니 내가 뭐 다닐 수가 있어야지. 어디 가서 마음 편히 앉아서 차도 못 마신다.”

 

▲ 한겨레 신문기자와 인터뷰하는 정윤회씨(왼쪽). 사진(한겨례)

 

▶ 2007년 경선 때는 이른바 ‘강남팀’이란 조직을 이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건 ‘카더라’ 통신 아닌가. 다 거짓말이다. 홍윤식씨 문제 생겼을 때도, 나는 홍윤식씨 얼굴도 못 봤어.” (당시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씨가 밀접한 관계라는 의혹을 이명박 캠프가 제기했다. 그러나 홍씨는 2012년 7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 지난해 대선에는 관여하지 않았나.
“나는 전혀 모른다. 독일에 나가 있었다. 독일은 내가 자주 왔다갔다 한다. 옛날에 무역을 그쪽하고 했기 때문에.”

▶ 박근혜 대통령 쪽과는 연락하지 않나.
“일을 관둔 이후로는 일절 안 한다.”

▶ 의원실 보좌진 출신 비서관들도 연락을 안 해오나.
“그 친구들도 연락 안 해. 나랑 연락한다 어쩐다 얘기 나오면 그런 게 다 대통령한테 부담이 되니까. 서로가 조심하고,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고.”

▶ 최근까지도 정치권에선 당신 이름이 등장했다.
“일단은 뭔가 핑계가 필요하고, 누구한테 미뤄야 하고. 난 너무너무 그런 걸 많이 당했어, 터무니없는 것들. 북한 얘기도 그렇다. (2002년 박 대통령의 방북 때) 나는 안 갔다. 내가 거길 왜 가요. 내가 모시고 있었을 때지만, EU상공회의소 이사들만 가는 건데, 내가 갈 이유가 없지. 그것도 내가 갔다 어쨌다 하는 게 다 ‘카더라’야. 그뿐 아니라 (내가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한테 20억인가, 30억(을 받아왔다고)? 뭐 그런 얘기까지 나와 갖고… 허허.”

정윤회 씨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된 의혹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인도네시아 방문설도 마찬가지다. 설사 이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에 행보가 주목받는데는 그만큼 그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만약 선데이저널의 보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현 정윤회를 둘러싼 정치권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리차드 윤 기자 입력 : 2013-11-10 10:11:25 / 수정 : 2013-11-07 10:20:33

이 기사는 펌 기사이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함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15. 16:05

박근혜의 오랜 남자 최태민, 최태민 목사 딸들은 부동산 재벌?

 

 

 

 

 

 

최태민 목사 가족은 박근혜를 만나전까지는 가난했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최태민 목사의 딸 일가는 수천억의 부동산을 보유하게 되었을까? 최태민 목사 가족의 가난을 증언했던 조순제씨는 최태민 목사 딸들의 재산형성 과정을 박근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아래기사 참조. 

 

 

"최태민 목사 일가 박근혜 만나기 전까지 가난했다"

- 최태민목사 5번째 처 아들 조순제 진정서

관련기사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oes21c/220180187301

 

 

최태민 목사 5번째 딸인 최순실 씨는 20~30대 부터 부동산 거래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자금의 출처는 최순실 자신이 유치원을 운영하여 벌었다는데 납득이 안되는 답변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측도 최순실씨가 땅을 매입할 때 최태민 목사 재산이 유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특별한 소득원 없이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는 최태민 목사 딸들.
제대로 된 나라라면 한번 쯤은 조사해 봐야하지 않을까?
이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의 기여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최태민 목사의 뇌물 비리들과 박근혜?
관련기사 바로가기  ☞  http://blog.naver.com/oes21c/220058413878

 

 

 

 

최순실 씨가 소유한 강남구 신사동 7층짜리 건물로 시가는 200억 원대라고 한다.

그리고 최순실 씨는 하남시 신장동에 위치한 음식적 부지를 2008년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데 시세는 40억원대라고한다.

 

 

 

최순실 씨는 강원도 평창군 일대 23만 431㎡(약 6만 9705평)의 땅을 보유했으나 2011년 최순실의 딸 정유연 양에게 증여했다.

 

 

 

 

 

 최태민 목사 6녀 최순천씨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청담동 9층 건물 시가는 약 1000억원 

 

 이상호 기자 고발뉴스의 취재를 막는 경비?

 

 

 최태민 목사 6녀 최순천씨 일가가 보유한 서초구 반포동 4층짜리 건물,

시가는 100억원 대 

 

 

 

 

 최태민 목사 4녀 최순득씨 일가가 보유한 강남구 삼성동 7층 건물, 시가 1000억원 대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8. 19:14

<진상추적> 박근혜의 두 남자, 정윤회·박지만 막후 권력 다툼 수면위로

 

■ 대통령의 그림자 정윤회…
■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그들의 추악한 암투가 시작됐다’


정윤회가 박지만 미행지시, 일거수일투족 감시 보고 받아
정 측 청와대 3인방-박 측 조응천 비서관의 대리전 양상
박지만 회장 미행 지시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몰랐을까?’
끊임없이 나도는 ‘마약 복용-인사 개입’ 뒷조사 가능성도
 

 

 

 

 

 

최근 본국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측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EG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11월부터 오토바이를 탄 정체불명의 사람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챈 박 회장은 12월 자신의 집 앞에서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붙잡아 추궁했다. 오토바이 운전기사는 ‘정윤회 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진술을 했고, 분노한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를 알렸다는 것이다. 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그동안 정치권 한 편에서 제기되어 온 두 사람 간 권력 암투설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 사람 간의 권력암투설은 이미 본보가 몇 차례 그 실체를 보도한 바 있으며, 이번 사건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원칙을 내세우며 막후 정치를 용납하지 않았던 박 대통령이지만, 이번 사건은 현 정부의 한 편에서는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추악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두 남자 ‘정윤회-박지만’의 권력암투 진상을 <선데이저널>이 집중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그 동안 정치권의 우려대로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의 또 하나의 그림자로 알려진 정윤회 씨는 박 대통령의 ‘약한 고리’인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1998~2004년 박 대통령의 국회 보좌관을 지냈고,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시절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동행했던 최 측근 중의 측근으로 막후 실세로 불리는 인물이다.
또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는 박근혜 총재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씨를 두고 ‘밤의 비서실장’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박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동생 박지만을 수개월 동안 미행자를 붙여 감시해 왔다는 사실이 세간에 드러나면서 그들의 싸움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본격적인 권력암투를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난 해 11월 10일 <선데이저널>은 <단독/ 최태민 사위 ‘정윤회’…또 하나의 그림자>라는 기사를 통해 정윤회 씨가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까지 쫓아가 막후 정치를 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본보는 정 씨가 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내 실세 비서관 3명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정 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청와대 내에서 적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두 사람, 각종 인사에 끊임없이 개입

당시 보도가 나가자 정 씨 측은 <선데이저널> 측에 연락을 해 와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이에 본보는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으나, 정 씨는 더 이상 연락을 취해 오지 않았다.
본보는 정 씨에 앞서 박지만 회장에게도 주목했다. 대표적인 것인 2013년 9월 29일 보도한 <단독/ 박지만 마약 사건 수사검사가 청와대 실세로>라는 기사였다. 당시 본보는 박지만 회장의 마약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인 조웅천 비서관이라고 보도했고, 조 비서관이 박 회장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고 지적했다.
즉 본보는 현 정부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두 사람의 행보에 주목했고,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권력 암투의 가능성도 주시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이런 의혹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 보도 이후 본국에서는 끊임없이 권력 암투설이 제기되어 왔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 3인과 막후의 정 씨가 각종 인사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으며, 여기에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다른 청와대 인사들과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묵은 권력암투

이번 시사저널 보도는 두 사람의 그러한 권력 암투의 실체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미행이 이뤄졌던 시점이나, 사건 발생 과정 개입된 인물들이 본보 기사와 많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먼저 시사저널이 보도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사저널의 보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11월부터 오토바이를 탄 정체불명의 사람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챈 박 회장은 12월 자신의 집 앞에서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붙잡아 추궁했다. 오토바이 운전기사는 ‘정윤회 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진술을 했고, 분노한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를 알렸다. 이에 민정수석실 ㄱ씨는 자신의 부하 ㄴ씨에게 이에 관한 내사를 지시했으나, 돌연 ㄴ씨가 인사발령이 나 내사가 중단됐다. ㄴ씨의 인사발령 과정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통령 측근’의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측근은 소위 ‘문고리’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 등 박 대통령 측근 ‘비서진 3인방’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정윤회 씨와 가까운 인사들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이번 사건이 인사 문제를 중심으로 싹튼 정윤회 라인과 박지만 회장 측의 갈등이 표면화된 게 아니냐고 해석했다.



먼저 미행이 일어났던 시점을 보자. 시사저널은 박 회장이 11월부터라고 했다. 이때는 본보가 정윤회 씨의 인도네시아행을 보도했던 시점과 일치한다. 즉 정 씨가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을 쫓아갈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점이었고, 이에 따라 박지만 회장과의 권력 투쟁이 본격화 되는 시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이 정 씨가 박 회장이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 원인이었던 셈이다.
다음은 박 회장의 얘기를 전해 듣고 내사를 지시했던 인물. 이 인물은 바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다. 본지가 보도했던대로 조 비서관은 박 회장의 후광으로 비서관 자리에 앉았고, 채동욱 혼외자 파문으로 민정수석이 경질되었을 때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던 사람이다. 특히 대통령 친인척관리를 담당하는 조 비서관의 존재는 반대로 정 씨에게는 눈엣가시였다고도 볼 수 있다.

양측 간 대리전 양상

정 씨와 박 회장 간의 직접적 권력다툼은 문고리 3인방과 조 비서관 간 인사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졌다. 조 비서관은 박 회장 미행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지시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사를 직접 담당한 행정관이 인사조치됐던 것.
행정관의 인사 조치 과정은 양측 간 권력다툼의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선데이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중심에는 조 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박지만 회장 미행 사건의 내사를 했던 경찰의 인사문제가 있다. 내사를 담당했던 행정관은 지난 1월 돌연 경찰로의 원대 복귀 명령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로부터 받았다. 청와대 파견 경찰은 매년 초 경찰의 정기 인사와 맞물려 일부가 교체된다. 승진자는 청와대에서 경찰로 복귀하고, 새 경찰이 파견가는 식이다. 그런데 올해는 승진자도 아닌 2명이 복귀 명단에 포함됐다. 두 사람 모두 청와대와 경찰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이들이었다. 경찰 내부에선 의문이 증폭됐다. 갑작스런 전원 복귀 지시→지시 철회→인사 대상이 아닌 2명의 복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미행사건을 내사했던 인물이었던 것.
다른 한 명은 문고리 권력 3인방에게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인물이었다. 보고서엔 ‘청와대 내 이런 저런 정보가 파견 경찰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측근 3인방이 파견 경찰을 모두 복귀시키려 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 사실을 안 민정수석실 내 다른 파견 경찰 B씨가 이를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보고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조 비서관은 “왜 일 잘 하는 경찰들을 아무 근거도 없는 이유로 내보내려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양측 미행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과 문고리 3인방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던 경찰만 원대 복귀 시키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지만 양측 간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한 상황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박대통령과 사전 교감 의혹

이번 보도에 대해 정 씨와 박 회장 측은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권 초 이런 보도가 나왔다는 것은 현 정부의 운영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미행 사건과 여기서 비롯된 청와대 비서실 간 갈등을 알고 있었느냐가 관심거리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아무리 정 씨라고 해도 대통령의 동생을 미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말이 사실이라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박 대통령이 권력이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양쪽을 이용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동생에 대한 불신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정 씨를 동원하는 것이라면 이는 대통령 스스로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청와대를 관리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정 씨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외부에는 정윤회 최순실 부부와 관련한 무수한 말들이 나돌고 있다. 특히 최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과정에서 최 씨가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 파다하다. 이런 비선조직은 반드시 부작용을 불러온다.
그러나 권력 투쟁이 아닌 동생 박지만에 대한 불신에서 미행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나마 있다. 본보가 몇 차례 보도했던 것처럼 박지만 씨는 과거 마약 경력이 여러 차례 있어나 박 대통령에게 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을 제쳐두고 비선을 활용한 것은 올바르지 못한 방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리차드 윤 기자 입력 : 2014-03-30 11:03:22 / 수정 : 2014-03-27 11:19:51

이 기사는 펌 기사이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함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8. 18:33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앞줄 왼쪽부터)과 남편 신동욱씨가 지난 2010년 11월 경북 영주시 화수사 추모관법당에서 열린 고 육영수 씨 ‘85주기 탄신제전’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뉴시스

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 ④ 박근령·신동욱
근령씨 부부-지만씨, 육영재단 놓고 불화…청부살인 진위공방
‘자산 3조원’ 재단 이사장직 근혜→근령→지만 순으로
각종 소송·폭력사태 이어져

신동욱씨 “박지만, 날 죽이려 해” 현재 무고 혐의로 재판받는 중

 

 

3남매간 불화의 시작은 육영재단이었다. 처음엔 박근령-박지만이 합세해 박근혜와 갈등을 빚었고, 다시 박근령과 박지만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1990년 10월28일 ‘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라는 단체가 어린이회관 앞에서 최태민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표면화된 다툼 끝에 결국 다음달 박근혜는 박근령에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8년 만인 2008년 육영재단은 온갖 소송과 폭력사태 끝에 다시 박지만에게 넘어갔다. 2001년 성동교육청은 감사를 벌인 뒤 운영상의 여러 비리를 이유로 박근령에 대한 이사장 승인을 취소했다. 오랜 소송 끝에 이 결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과정을 거쳐 법원은 박근령과 재단 쪽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을 배제하고 박지만이 추천한 이사 후보 9명을 임시이사로 선임했다.

 

 

너무도 깊은 골 생긴 자매간

 

경기여고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박근령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언니의 개인비서를 자청해 활동하다 10·26을 맞았다. 이후 언니와 같이 생활하던 중 198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갔고, 1990년 귀국해 언니로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박지만 쪽과 다툼이 이어지던 2008년 총선 때는 한나라당 충북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근혜가 당시 공천 결과에 강하게 반발, 당의 지원 유세 요청을 거부한 채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물고 있던 상황에서였다. 박근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생활비가 없어 은행 신용대출을 받아 생활했는데, 대출이자가 몇달씩 연체될 정도로 힘든 생활을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한국재난구호 총재와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지난 4·11 총선 때는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출마해 다시 한번 언니를 곤혹스럽게 했다. 애초 자유선진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곧 사퇴했다. 그는 후보 등록 때 재산이 한푼도 없지만 5년 동안 소득세로 4079만원을 냈다고 밝혔다.

 

 

 

 

“청부 살인” 고소해 구속 

박근령은 2008년 10월 14살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식에 언니와 동생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령과 신동욱 모두 재혼이다. 박근령은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 6개월 만에 이혼한 바 있다.  

신동욱은 부산 성도고와 부산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 일을 하다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말에는 한나라당 디지털정당 위원장에 응모했다가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돼 정계에 발을 디딘다.  신동욱은 2006년 육영재단 자문위원이 된 뒤 다음해 2월4일 단 둘이서 관악산에 올라 약혼식을 올렸으며, 곧바로 재단 감사실장이 됐다. 2008년 총선 때는 서울 중랑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지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신동욱은 지난해 8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와 박지만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다. 2009년 5월 박근혜의 미니홈피에는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매형인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글이 40여 차례 올라왔다. 박 대표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 결과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글을 올린 이가 신동욱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욱은 2007년 박근령 남매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자신에게 “박근혜 경선 캠프의 심부름을 간다”며 중국 칭다오에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박용철 및 박용철의 친구인 김아무개와 함께 2007년 7월1일 칭다오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국행은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48)가 박용철에게 자신을 중국에서 죽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고, 그 배후에는 근령씨와의 결혼을 막으려던 지만씨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도한, 당시 주칭다오 한국영사관이 외교통상부에 보고한 문서엔 ‘신동욱이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를 보면, 신씨 일행은 1일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뒤 성매매 혐의로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박씨와 김씨는 다음날 귀국했지만, 신씨는 공안 사무실로 연행돼 다음날 오후 5시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 신씨는 이날 밤 호텔 속옷만 입은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 허벅지 골정상을 입었고, 시내를 배회하다 택시기사 신고로 파출소로 인계됐다. 파출소는 시 공안국에 ‘신원불명 외국인 행려자’로 신고했고, 신씨는 외사과 경찰관에게 자신을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인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 약혼자”라고 말했다. 공안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김아무개 영사를 보고 신씨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를 납치하고 있다”고 했고, 중국 외사경찰관에 대해선 “김책이라는 북한공작원”이라고 하는 등 “환각상태가 지속됐다”고 문서는 적었다.  

이에 대해 신동욱은 “당시 박용철 일행의 꾐에 빠져 술을 마시고 여종업원과 호텔에 갔으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치고 박용철이 나를 놔둔채 귀국해버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껴 호텔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한다. 신동욱은 귀국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용철이 스스로 “중국에서 신동욱과 함께 마약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씨 소변을 검사한 결과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동욱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던 2010년 7월 박용철은 갑자기 육영재단 여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용희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철은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지만 7개월 만에 정용희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는 그 뒤 “박지만 회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박 회장 쪽이 나를 쫓아냈다”고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동욱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돼서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박지만이 직접 지시했는지는 모른다”며 “그런데도 신동욱 쪽이 나를 납치해 ‘박지만이 주모자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신동욱에 대한 1심 판결문은 청도 사건에 대한 신동욱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이를 허위사실로 결론지었다.

 

“사촌간 살인사건도 수상” 

지난해 9월6일 박용철(당시 49살)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안내센터 부근 노상 주차장에서 얼굴과 상체 등 모두 15곳을 흉기로 찔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곧바로 3㎞가량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박용수(당시 51살)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들로, 사촌간이다. 신동욱 쪽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혐의를 벗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갑자기 살해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 결과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했던 박용수가 몇년 전부터 생활이 힘들어졌는데, 애초 친하게 지냈던 사촌동생 박용철이 자신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등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이에 원한을 품고 ‘박용철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주변 사람의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
김인현 기자 

이 기사는 펌 기사이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함 

 

출처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3202.html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7. 23:47

 

"박근혜 '배신 트라우마'가 비선 의존 국정 원인"

 

 

부친 서거 이후 많은 배신 경험탓

주변 사람에 좀처럼 마음 안 열어

 

 

박근혜 대통령 삶의 궤적이 권력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수 많은 인간적인 배신을 당한 경험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주변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며 어럽고 외로울 때 가까이 했던 사람을 경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7일 통화에서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은둔의 삶이었고 1979년 청와대를 나온 후 1998년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는 칩거와 다름없었다"며 "이런 것이 몸에 베어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최진 소장은 최근 청와대 3인방 등 비선라인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닫힌 리더십'에는 민심 전달 등 직언을 하는 '열린 비선라인'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도 있다"며 "그러나 비선라인의 인사 개입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이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고 우려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부친의 통치 스타일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 같다"며 "청와대 3인방이 힘있는 2인자가 아니기 때문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 이라는 판단 아래 믿고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서거 후 주변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생겼을 것"이라며 "측근 그룹을 공적 라인보다 비선라인에 두고 의존하는 권력운용 방식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성주 성균관대 교수는 "배신을 많이 당해 상대를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로 인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소통이 안되고 있다"며 "자연히 어느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걱정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배신 트라우마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제하는 측면이 강해 한 쪽으로만 달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만기친람보다 장관의 역할이 활성화하는 '위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범진 전 의원은 "고독한 생활을 오래하면서 인간관계가 폭넓지 않았을 것'이라며 "힘들 때 의지했던 사람을 멀리 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국민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국회 국방위에서 함께 의정활동을 한 유재건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젊은 나이에 부모를 잃는 등 개인 가족사가 슬프다"며 "전직 장관이 자신이 모신 최고 지도자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일이 벌어지는 등 정권 말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주변의 몇 사람에 의지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과 소통할 것을 주문했다.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7. 17:03

 

박근령 남편 신동욱 "아내, 빚쟁이들에 쫓기고 있다"

 

 

박근혜의 여동생 박근령씨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지난 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육영재단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생긴 빚이 8억원 정도"라면서 "아내는 밤에 누가 초인종을 누르면 빚쟁이가 찾아왔는 줄 알고 전등과 TV부터 끈 채 공포에 떤다"고 밝혔다.

 

1982년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았던 육영재단은 1990년 박근령씨에게 이사장 자리가 넘어갔다가 2000년대 들어 박근령씨와 박지만씨가 법적 분쟁을 넘어 폭력까지 동원하며 경영권 다툼을 벌인 끝에 박지만씨가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와 관련해 신동욱씨는 2010년 1월 박지만씨가 박근령씨에게서 육영재단을 빼앗으려 하는 것을 박근혜가 묵인했다는 내용의 비방 글을 작성하고 같은 해 9월엔 박지만씨가 신동욱과 박근령씨의 결혼을 막으려 자신을 중국으로 납치 살해하려 했다는 허위사실 등을 유포한 혐의로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신동욱은 2011년 8월 구속돼 2013년 2월21일 출소했다.

 

현재 지인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고 밝힌 신동욱은 "감옥에서 나와보니,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 살았던 성북동 아파트도 공중분해돼 빚 청산에 쓰였지만 그걸로도 빚을 다 막을 수 없었다"면서 "아내가 며칠 전에도 전화로 울고불고 하던데,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아내는 '언니는 권력을 가졌고, 동생은 재물을 가졌는데, 왜 나만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박지만 EG 회장(좌), 박근령(중앙), 박근혜(우)

신동욱씨는 경영권 다툼 이후 박근령이 갖고 있는 박지만씨를 향한 서운함과 원망의 감정도 전했다.

 

신동욱씨는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로는 남동생이 이지(EG)를 설립하는데 밑천을 대준 게 아내"라면서 "아내는 자신이 풍산금속 장남과 결혼해 6개월만에 이혼하면서 받은 위자료를 동생 회사 밑천으로 대준 것은 물론이고, 재벌 회장들을 찾아가 동생을 도와달라고 읍소까지 해 동생을 일으켜 세웠다고 나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박지만 EG 회장(좌), 신동욱(우)

신동욱씨는 "아내는 당시 맨 처음 현대그룹 왕회장(정주영)을 찾아가 동생을 도와달라고 했지만 왕회장이 '큰 영애(박근혜)'가 오면 도와주겠다고 해 두번 다시 찾아가지 않았고, 이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포스코 박태준 회장을 찾아가 두 분에게서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동욱씨는 "처남인 박지만 이지(EG) 회장이 박근령씨의 빚을 청산해줄 것이란 말을 1년 전부터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고, 그 배경에는 처남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신동욱씨는 "그래도 예전에 비해 박지만 회장과 박근령의 사이는 많이 좋아졌다"면서 "박지만 회장과 아내는 요즘 서로 문자도 주고받고, 아내의 생일에는 생일상도 보내온다"고 말했다.

 

 

posted by silverstone236 2014. 12. 5. 09:52

아이고~무서워라, 박근혜의 말

 

 

박근혜가 25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규제 개혁을 강조하며 "일자리 창출과 투자 가로막는 규제를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두대'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강조한 것인데 대통령의 이런 화법은 처음이 아니다.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는 올해초 발언이 시작이다. 박근혜의 '무시무시' 발언을 정리했다. 박근혜의 무시무시 발언의 끝은?

끝은...... 당장 퇴진이다!​ 그리고 단두대다!  명박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