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2. 7. 22:41

 “함부로 쓴 글…MB한텐 직언하는 참모도 없는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한 이명박 전 대통령

 

노태우·김대중 회고록 집필자 인터뷰

노태우·김대중 회고록 집필자들
MB 회고록과 기록문화 말하다

 

대통령의 가벼운 시간

 

기록은 문화다. 지난 2일 출간된 이명박(74)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다양한 반응을 낳고 있다. 대체로 두 가지 점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비공개 만찬에서 한 발언 등을 그대로 공개했다. 현 정권의 외교 관계와 국익을 위해 부적절한 공개였다는 비판이 있다. 출간 시점이 지나치게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진지한 성찰 없이 자화자찬만 있다는 비판이 두번째다. 대통령과 정치인의 회고록에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바람직한 회고록 문화에 대해 의견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측근들에게 회고록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겨레> 토요판은 전직 대통령 회고록 집필자 2명의 경험을 청해 들었다. 찬반을 서둘러 묻기보다, 바람직한 회고록 문화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뒷모습 맨 왼쪽)이 지난 4일 오전 10시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건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기자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경호원의 얼굴은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 하였다.(왼쪽·가운데) 다시 정오께 사무실 건물 현관을 나서고 있다

 

 

“우리가 이룩한 것을 정리해 앞으로 국가와 시대를 책임질 사람들에게 발판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줌으로써 역사에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노태우 회고록>(조선뉴스프레스·2011년)의 머리글이다. 대통령 회고록은 그저 에세이가 아니다. 대통령은 공인 가운데 공인이다. 공복으로서 경험을 정리한 대통령 회고록은 그 자체가 역사책이다. 말의 무게가 다르다.

회고록의 원칙과 철학은 무엇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30일 언론 기자회견을 통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의 전자파일을 공개했고 2일 인쇄본이 정식으로 서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당장 다양한 반응을 불렀다.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청와대의 고위 관료는 30일 출입기자들과 만나 “유감” “정치공학적 해석”이라고 비판했고 “국민이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고위 관료의 발언은 ‘고위 관계자’라는 주어로 보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에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반박은 회고록의 박근혜 대통령 부분 때문에 나왔다. 적지 않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외교상 비밀을 부적절하게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솔직한 소회나 성찰을 거의 찾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로 이 전 대통령을 줄곧 비판해온 야당과 시민단체로부터 나온다. 물론 반론도 있다. 대통령의 회고록 발간이 당연시된 미국에서도 퇴임 2~3년 만에 회고록을 낸 사례가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미국 대통령 회고록은 이 전 대통령 회고록보다 더 자세하게 외교 비사를 공개한다는 반박도 있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회고록 쓰기에 관해 합의된 문화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다. 한국전쟁, 쿠데타, 시위, 암살, 군사독재 등 역사적 격변이 압축적으로 벌어졌다. 회고록을 남기지 않은 대통령이 많다.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쓰지 않고 숨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살아 있지만 회고록을 쓸지 분명치 않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만 회고록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온전히 자서전으로 보기 어렵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집필했다.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찬반론을 중계하기보다, 전직 대통령 회고록 집필 담당자에게 과거 대통령 회고록의 원칙과 철학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어느 수준으로 비밀을 공개해야 하는지’, ‘대통령의 회고록이 지녀야 할 원칙과 철학은 무엇인지’, ‘빼고 넣을 것을 정할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노태우 회고록> 내용 확인과 출간 실무를 맡은 손주환(76) 전 공보처 장관과 <김대중 자서전> 구술 정리·집필을 맡았던 김택근(61)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전화 인터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회고록 집필을 맡았던 윤무한(숨질 당시 68살) 전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은 2011년 5월 세상을 떠나 연락할 수 없었다.

 

노태우 회고록 실무 손주환 전 장관
“50, 100년 뒤 밝혀야 할 부분이
남북 관계에는 많아서
남북대화는 상당히 제한적 기술
대표적인 게 서동권 안기부장 방북”

김대중 회고록 실무 김택근 전 위원
일면식 없었는데 집필자로 낙점
공정한 서술 위해 비서관들에게
“누구도 간섭하지 말라” 지시
발간 전 국정원에 법적 검토도

 

퇴임 18년 뒤 나온 노태우 회고록

 

손주환 전 장관은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을 읽지 않아 직접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 회고록 집필 과정과 고민에 대해서는 오래 설명했다.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해 그는 철저한 사실 확인 작업을 먼저 언급했다. “(노태우) 대통령께서 옥중에 계시면서 직접 회고록을 썼다. 그런데 썼다는 얘기만 있었고 (내란죄 재판 이후) 출옥하고서도 한동안 말씀이 없으셔서 내가 1년 정도 지난 뒤에 보여달라고 했다. 보니까 출간해도 되겠다 싶어 건의를 드렸다. 그때부터 팀을 꾸려 (내용을) 고증하는 작업을 했다. 분야별로 담당 수석과 내각의 장관들이 팀을 이뤘다.” 손 전 장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회고록은 검증팀을 꾸린 뒤 팀별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식으로 작성됐다. 가령 정치 분야의 서술은 손 전 장관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북방정책은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이 분야별로 노 전 대통령이 쓴 내용을 보완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만 4년이 걸렸다. 그렇게 4년 동안 작업해서 완성을 하고도 한동안 책을 내지 못했다. 그때가 2007년이다. 노 전 대통령께서 언제 책을 낼지 ‘더 고민해보자’고 하셨다. 나를 비롯한 참모들은 시기를 보고 있었다. 2011년에 대통령이 팔순이 되고 퇴임한 지 18년이 되었다. 그 정도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역사적 증언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건의를 드렸고 대통령과 영부인, 가족들과 협의해 그해에 출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1993년 재임했다. 그의 회고록은 2011년 8월에 출판됐다. 1997년 내란죄 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수감생활을 할 때 직접 초고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퇴임 뒤 단순 햇수 기준으로 19년 뒤 출간됐다. 출간 시기를 오래 고민했다. 노 전 대통령에 비하면 확실히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은 일찍 발간됐다. 2013년 2월 퇴임 이후 정확히 2년 만이다. “대통령이 쓰신 것을 고증하는 데 4~5년이 걸렸다. 이 회고록에는 구술하고 대필한 사람이 없다. 그냥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쓰신 거다. 직접 쓰신 것을 고증하는 데도 4~5년이 걸렸다. 그만큼 대통령의 증언이 역사 앞에, 국민 앞에서 하는 고백, 컨페션이기 때문에 진솔해야 한다고 봤다. 출간 시기를 고르고 고른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이와 다른 사례도 외국에 존재한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은 퇴임 뒤 2~3년 만에 회고록을 출간했다.

 

이어 <한겨레>가 “대북정책 등 외교상 민감한 부분을 어느 수준까지 회고록에 공개할 것인지 고민했느냐”고 물었다. 손 전 장관은 직접 답변에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 이 시점에 우리가 먹고산다”며 “중국과의 수교로 한-중의 무역량이 일본과 미국의 무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제6공화국이 당시 외교·안보 문제에 주력했고 큰 성과를 올렸다는 취지다. 이어 손 전 장관은 남북 문제와 관련해서 노 전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상당 부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는 좀 특수하다. 팩트에 대해서도 발췌해야 할 부분이 있고 묻어둬야 할 부분이 있다. 묻어두고서 50년, 100년 정도 뒤에 밝혀야 할 부분이 남북관계에는 많다. 그래서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에도 남북대화에 대해선 상당히 제한적으로 기술돼 있다”고 말했다.

 

손 전 장관이 대표적으로 거론한 예가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 방북’ 건이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때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표됐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도 이뤄졌다. 남북관계의 큰 진전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당시 서동권 안기부장이 비밀특사로 여러차례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이번에 북이 쌀이나 비료를 내놔라, 그랬다고 하는데, 사실 북은 크고 작은 규모의 회의를 열 때마다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이번에 공개된 그런 요구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만나고 협의한 우리(6공화국)는 어땠겠나. 그거 하나에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회고록에도 서동권 안기부장을 특사로 보낸 얘기는 적었지만 북이 반대급부로 요구한 내용들은 일체 쓰지 않았다. 그건 역사 앞에, 국민 앞에 당장 밝혀야 할 내용이라고 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도 회고록에 ‘정치적 논쟁’을 부른 내용을 공개했다. 3당 합당으로 여당 대선 후보가 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 3000억원을 줬다고 밝힌 것이다. 논란과 논쟁을 샀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 공개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수사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5공과 6공에 걸쳐 안기부 특보로 남북협상에 관여했던 박철언 전 장관도 <대통령의 시간>의 남북관계 서술을 비판했다. 박 전 장관은 지난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과 남북 접촉 서술에 대해 “정권이 끝나도 민족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민감한 비밀회담 대목들을 공개하면 앞으로 어느 나라 정상이 한국 대통령과 비밀회담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나도 내 회고록(<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쓰면서 당시 김일성 주석과 만난 일에 관해 얼마나 (회고록에) 쓰고 싶은 말이 많았겠나. 그러나 그것을 백서로 만들어 보관했을 뿐 회고록에는 다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김기남 비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앞으로 좀 잘하세요”라고 말한 장면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 회사 부하도 아닌데,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다만 손 전 장관은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이 지나치게 자화자찬으로 흘렀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질문에는 “(대통령의 회고록은) 자기를 비하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편 정책이 어떤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만 보더라도 언론과 사회 일각에서 비판을 받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그걸 왜 하려고 했는지, 그걸 하려고 한 자신의 국정 철학과 미래 비전이 무엇이었는지는 얘기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팩트가 잘못됐으면 언론은 지적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의 취지나 의도를 밝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태우 회고록> 출간 실무를 맡았던 손주환 전 공보처 장관(왼쪽)과 <김대중 자서전> 구술 정리·집필을 맡았던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 “소설처럼 재미있게”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한 김택근 전 논설위원은 ‘뚜렷한 집필 원칙과 철학’을 김 전 대통령 자서전 집필의 특징으로 꼽았다. 김 전 논설위원은 <한겨레>가 지난 4일 전화로 “김 전 대통령이 지시한 회고록 집필의 원칙이 있었느냐”고 묻자 “첫째, 공정하게 서술하라, 둘째, 역사에 교훈이 되도록 서술하라, 셋째는 소설처럼 재미있게 서술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2003년 2월 재임했다. 자서전 준비는 2004년부터 시작했고 2010년 7월 648쪽 분량으로 도서출판 삼인에서 출판됐다.

 

‘사실 확인에 오래 걸린 점’, ‘민감한 외교안보 정보를 많이 거른 점’ 등은 노 전 대통령 회고록과 김 전 대통령 회고록의 공통점이다. 김 전 논설위원은 “당시 자서전 집필을 위해 사초 168권, 구술, 일기, 연설문, 틈틈이 쓴 메모들, 국정 노트,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대에) 안기부(현 국정원)에 끌려가서 취조받던 당시 녹음된 테이프,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증언 등 엄청난 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구술을 41회 받아적었고 집필 과정에서 의문점이 생기면 수시로 만났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설립 등 남북관계 개선이 김 전 대통령의 대표적 치적으로 꼽힌다. 자서전에도 남북관계와 관련한 내용이 많이 들어갔다.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이 세심하게 스크린해줬다”고 답했다. 이어 자서전의 기초자료인 사초 168권에 외교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당시 대통령기록물법 시행 전이어서 법률적으로 자료를 보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내기 전에 국가정보원에 법률 자문을 받았다.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발간 전에 국정원과 접촉해 남북정상회담 관계된 내용을 기술하는 것이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지 문의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시행됐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국가기록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 일부를 복사해 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이는 중이다. 정상회담 내용 등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다 김두우 전 수석이 집필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대통령기록관에서 자료를 열람했다고 밝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두우 전 수석에게 <한겨레>가 지난 4일 이런 가능성에 대해 묻자 김 수석은 “합법적으로 집필했다는 것 외에 더 말할 것이 없다”고만 답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일면식도 없고 정치부 출입 경험도 없던 김택근 전 논설위원을 집필자로 콕 집어 택했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어떻게 대통령 자서전 작가가 됐느냐”는 질문에 김 전 논설위원은 “(당시) 왕성하게 칼럼을 쓸 때여서 칼럼을 보고 저한테 제의가 왔다”고 말했다. “나는 정치부 기자도 하지 않았다. 그분(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점이,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자기가 찍으면 그냥 한다. 그런 부분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면식도 없는데 저를 선택한 이유가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에 들지 말고 객관적으로 서술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라 생각했다. ‘김대중 자서전’에 이름 한 줄 올리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입원하기 4일 전에 저를 불렀고 비서관들에게 ‘자서전은 두 사람(김 전 논설위원과 집필 보조)이 모든 집필 책임을 진다. 누구도 거기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김 전 논설위원은 “실제로 간섭이 전혀 없었다. 디테일, 가령 몇시에 누구를 만나고 했던 그런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자서전) 2권 구술할 때는 관련 분야, 예를 들면 안보 분야면 당시 장차관이 배석해 대통령의 기억을 도와주었다”고 덧붙였다.

 

5·6공 남북협상 관여 박철언 전 장관
“민감한 비밀회담 대목 공개하면
어느 나라 정상과 비밀회담 하겠나
나도 김일성 주석과 만난 일
쓰고 싶었지만 백서로만 보관”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
“회고록은 진실해야 하는데
살아 있을 때 내면 자화자찬에
실수도 감추려 할 수도 있어
김 전 대통령이 사후 내겠다고 해”

 

다음 정권에 대한 섭섭함?

 

김 전 대통령도 출간 시점을 깊이 고민했다. “김 전 대통령이 사후에 (자서전을) 내려고 했던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자서전에 신뢰감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자서전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고려했던 것 같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왜 그러십니까’라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은 지난 3일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생전에 내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다음에 나왔다. 회고록은 객관적이고 진실해야 하는데, 살아 있을 때 내면 자화자찬도 하고, 실수도 감추려 할 수도 있어서 사후에 내겠다고 했다. 역사와 국민 앞에 솔직한 것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라고 봤다”고 말했다.

 

출간 시기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은 노태우·김대중 전 대통령 회고록과 다르다.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을 총괄 집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달 30일 회고록 발간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출간 시기에 대한 질문에 대해 “‘왜 하필 이 시기냐’고 한다, 이 부분은 간단하다. 2013년 10월부터 (시기를) 물어서, 2014년 12월, 또는 2015년 1월은 되어야 완성된다고 (출판사에) 말했다. 예정대로 (작업이) 순조롭게 됐다”고 답했다. 출판사와의 계약 시점과 그에 따른 집필 마감에 단순히 맞췄을 뿐이라는 취지다.

 

김택근 전 논설위원은 <대통령의 시간>에 대해 읽어보지 않았지만 보도를 통해 접했음을 전제로 “정권들이 그런 유혹을 받는다, 다음 정권에 대한 섭섭함이 꽤 많다”고 간접적으로 평했다. 그는 “김대중 자서전을 쓸 때 노무현 정권에 대해 (일부 참모들이) 섭섭함을 표현한 게 많았다. 그런 걸 정제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그러나 회고록을 역사에 던지는 것 아닌가. 김대중 자서전과 (내가 이어 쓴) 평전은 그런 것들을 정제하려고 상당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북송금과 관련해 박지원 전 장관 등 김대중 정부 각료가 노무현 정부 때 형사처벌을 받았다. 김 전 논설위원의 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직접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다. 이 전 대통령이 남북 접촉 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관계, 국익도 생각 안 하고 모든 걸 폭로하는 식으로 무작위하게 이번에 (폭로)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외교와 대북관계 부분은 유명환,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이 검토했다고 밝혔다.

 

김 전 논설위원에게 “이 전 대통령이 왜 지금 회고록을 냈을까”라고 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람들 때문 아닐까. 대통령의 시간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 사람들이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이라는 억울한 측면이 있었을 것 같다. 일종의 항변이라고 느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한테는 직언하고 사태를 종합적, 체계적,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참모들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그런데 지도자라고 했던 분이 함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두언 “참회록 쓰고 있다”

 

“나는 대선 승리의 짜릿함을 기억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내 책임의 막중한 무게도 또한 느끼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발간된 영문 자서전 <언차티드 패스>(Uncharted path. 소스북스)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2007년 이명박 캠프 대선준비팀장을 맡으며 정권 창출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일 <문화방송>(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집필 중인 자신의 책에 대해 “제가 쓰는 건 회고록이 아니고요. 참회록”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이 무게감 있게 쓰여졌는지 사람마다 달리 느끼는 것 같다. ‘5년의 시간’에 대한 기억도 다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적어도 기록과 관련해 불우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하야와 총격 등 정치적 격변으로 회고록이 없다. 1963년 대선 전 펴낸 <국가와 혁명과 나>는 자서전으로 보기 어렵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리적 시간은 있었으나 별 이유 없이 회고록을 쓰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만 온전한 의미에서 회고록을 펴냈다.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