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2. 13. 09:47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 반성문 “구치소서 샴푸 빌려…고마웠다”

 

재판장, 비뚤어진 ‘황제경영’ 질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무너뜨려” 징역 1년 선고
“항공보안법 규정 ‘운항중’은 문이 닫힌 때부터 시작
사무장에 대한 위력 행사는기장에 위력 행사와 동일”

 

 

미국 뉴욕발 대한항공 A380 여객기를 강제 회항시킨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1심에서 징역 1년형이 선고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호송버스가 법원 밖으로 나가고 있다.

 

 

 

“돈과 지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존감을 무릎 꿇린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직원을 노예쯤으로만 여기지 않았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12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오성우 재판장은 작은 견과류 서비스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재벌 총수 일가의 비뚤어진 ‘황제 경영’에서 찾았다. 재판장은 사건 당시 “조 전 부사장이 비행기를 자가용마냥 후진시켰다”는 1등석 승객의 진술을 언급하며 “비상식적 행동”이라고 질타했다.

 

1심 선고 직전까지 모두 6차례나 반성문을 제출했던 조현아 전 부사장은 선고일인 12일에도 일곱번째 반성문을 추가로 냈지만 결국 실형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날 재판장은 형사재판에서는 이례적으로 조 전 부사장이 낸 반성문을 직접 읽어내려갔다. “박창진 사무장 등도 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면목 없고 진심으로 죄송하다… 30일 동안 구치소 생활에서 제게 주어진 건 두루마리 휴지와 수저, 비누, 양말 두 켤레가 전부였다. 주위 분들이 샴푸와 린스를 빌려주고 과자도 내주었다. 고마웠다. 더 고마웠던 것은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배려라고 생각한다. 저는 배려가 부족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재판장이 자신이 쓴 반성문을 읽는 동안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공판 과정에서 승무원과 기장에게 회항 책임을 돌렸던 조 전 부사장의 갑작스런 ‘반성’에 대해 재판장은 “반성문을 보면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선고된 징역 1년은 유죄가 인정된 항공보안법의 항로변경죄(징역 1~10년)의 최저형에 해당한다. 항공보안법의 안전운항저해폭행죄, 업무방해죄와 강요죄까지 유죄가 인정됐는데도 가중처벌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다른 범죄들은 유죄만 인정됐을 뿐 양형에 포함시키지 않은 셈이다. 앞서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회항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점,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법정에 나와 박창진 사무장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한 점도 반영됐다.

 

 

 

 

한편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던 ‘지상 주기장=항로’ 여부에 대해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했다. 변호인단은 ‘주기장(램프)에서 17m 회항시킨 것은 항로변경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항공보안법이 규정한 ‘운항중’은 항공기 문이 닫힌 때부터 시작한다. 이는 이륙 전 지상이동 상태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며 “항로를 (지상을 제외한) 고도 200m 이상의 ‘항공로’로 좁혀 해석할 경우 항공보안법의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 쪽 주장대로라면 지상에서의 강제 회항을 처벌할 규정이 없는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회항의 최종 결정은 기장이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기장은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 내에서 욕설을 하고 화를 내며 박창진 사무장 하기를 요구하는 위세와 위력에 제압돼 리턴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기내 안내방송이 있었고, 토잉카로 항공기가 이동하는 경우 관성의 법칙 때문에 항공기가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고, 후진하는 경우에는 더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일축했다.

변호인들은 난감해하며 곧 회의를 열어 항소심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서창희 변호사는 “판결문을 검토하고 조 전 부사장과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짧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