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ilverstone236 2015. 2. 5. 10:06

아르헨티나 뒤흔드는 한 검사의 죽음

 

‘대통령 체포영장’ 작성까지 드러나

“대통령이 폭탄테러 배후 은폐” 주장
청문회 증언 전날 주검으로 발견
일간지서 영장 사본 사진 공개해

 

 

 

지난달 2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의 장례식장 앞에서 한 여성이 스페인어로 “정의”라고 쓴 손팻말과 장미꽃을 들고 서 있다. 니스만 검사는 지난달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의회 청문회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수사 방해 증거를 밝히기 하루 전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뉴시스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폭탄테러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의 수사 방해 의혹을 제기해오다 숨진 채 발견된 검사가 현직 대통령의 체포영장까지 작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아르헨티나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

 

 

아르헨티나 일간 <클라린>은 지난달 18일 숨진 채 발견된 알베르토 니스만(51) 검사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무장관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작성했었다고 1일 보도했다. 이튿날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측근 호르헤 카피타니치 수석장관은 “반대세력의 쓰레기 같은 거짓말”이라며 정면 부인했다. 그는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해당 신문을 갈가리 찢었다. 니스만 검사 사망사건을 수사해온 비비아나 페인 검사도 같은 날 ‘영장 초안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클라린>은 3일치 신문에 니스만 검사가 작성했다는 대통령 체포영장 사본 사진을 실었다. 수석장관은 사임했다. 페인 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초안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다”며 “용어와 해석의 오류가 있었다”고 물러섰다. 그는 니스만 검사의 자택 쓰레기통에서 찢긴 26쪽짜리 서류를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 대통령 체포영장 초안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 서류는 지난해 6월 작성됐다. 니스만 검사는 ‘키르치네르 대통령 등이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AMIA) 건물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증거를 의회 청문회에 제시하기로 한 바로 전날 주검으로 발견됐다.

 

니스만 검사가 죽기 나흘 전 법원에 제출한 289쪽짜리 공소장에는 ‘키르치네르 대통령 등이 이란과 비밀접촉을 통해 수사를 방해하려고 했다’며 그들에 대한 법정 신문과 자산동결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니스만 검사가 대통령 체포영장을 청구했을 경우 ‘정치 공작’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어 포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대통령과 외무장관 모두 면책권을 가져, 재판부가 탄핵 절차에 버금가는 ‘의회 체포동의 요구’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판사들은 이번 사건 맡기를 꺼리며 서로 떠넘기고 있다. 니스만 검사 사망사건의 실체도 의문투성이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페인 검사가 정권의 수사 지휘를 받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페인 검사는 ‘수사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오는 18일부터 보름간 휴가를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가 휴가를 간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니스만은 유대인이었다’고 비꼬는 포스터들이 등장했다. 니스만 검사의 죽음을 최초 보도한 기자도 유대인이었다.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아르헨티나를 떠나 현재 이스라엘에 머물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체포영장이 검사의 정의감에서 비롯했는지, 아니면 유대인이라는 배경이 작용했는지는 의문이다.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이란은 이스라엘과 앙숙이다.